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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주 번역 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아라공
    독서일지 2018. 5. 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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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아라공(1897. 10. 3 ~ 2982. 12. 24)

     아라공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를 주도한 시인, 소설가이고 진보적 정치 행동가이기도 하다.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그 후로 그는 공산당의 문학과 예술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1928년 러시아 태생의 엘자 트리올레트를 만나 결혼했고 아내로부터 끊임없는 영감을 받았다. 1933년에는 그의 정치 참여 때문에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을 했고, 1945년 프랑스 공산당 중앙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장편 소설 <현실 세계>는 사회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을 역사적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으며, <단장 시집> <프랑스의 기상 나팔>에 실린 시들은 아라공의 열렬한 애국심을, 시집 <엘자의 눈> <나에게는 엘자의 파리밖에 없다>에서는 아내 엘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1957년에 레닌 평화상을 1981년에는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시집 中


     알라딘 본투리드 32탄 김남주 번역시집 특별판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을 읽고 있습니다. 故 김남주 시인이 옥중에서 교도관 두 명에게 종이와 펜을 몰래 얻어 자신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저항시인들의 시를 번역하였고,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이 아라공, 마야코프스키, 하인리히 하이네 4명의 시인의 시 번역 원고를 교도관의 도움으로 밀반출해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가 시집으로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아라공의 번역 시들 중 마음에 남는 시 3편을 소개합니다.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저 행복한 한때나 백열처럼 뜨거운 한낮이나

    아마빛의 갈라진 틈이 있는 어둡고 끝이 없는 밤

    이들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못하고 언젠가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확실히 이 세상을 믿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들도 풀잎을 애무하고 그대를 사랑하며 속삭이고

    석양의 어둠 속에서 소리를 죽이고 꿈을 꿀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문득 만난 아이들에게 미소를 짓고

    그 이름이 불리면 뒤돌아볼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들고 구름을 볼 것이다


    역시 기쁨에 떠는 연인들이 있고

    두 사람의 첫 여명이 될 아침이 올 것이다

    역시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빛이 떠돌 것이다

    지나가는 나그네 말고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하늘이 순간적으로 아주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으로는 아직 뛰어남이 다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그 가슴에 품고 있는 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진실로 나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 그것은 거의 짧은 순간에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생명은 술잔에서 넘치는 술처럼

    넘쳐흘러간다 기쁨과 고통이 되어

    바다도 우리들의 갈증을 다 풀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또 비록 가혹한 시대가 온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척추가 있는 무거운 푸대로 태어나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또 입언저리르 비트는 깊은 고뇌가 있다 할지라도


    나도 또한 평생 도둑의 지식처럼

    저 가슴을 에이는 고뇌를 안고 왔다 할지라도

    그 고뇌하는 여우에게 심장을 물어뜯겨

    잠 못 이루는 밤, 전쟁, 불의와 부정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주의나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로

    다른 사람들을 가둬 넣고 억지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저 무서운 권모수술수나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비웃는다거나 중상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밑 빠진 우물과도 흡사한 저주받은 날들이 있다 할지라도

    증오를 응시하고 있는 저 끝없는 밤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며

    쇠고랑을 휴대한 괴뢰와 적들이 있다 할지라도


    수상쩍은 도당을 만든 놈들이 던지는

    저 얼토당토않는 잔인함과 너절한 짓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우스꽝스런 사상을 지지하며 악담을 퍼뜨리고

    여전히 뻔뻔스런 자들이 어떤 혹독한 짓을 소안해낸다더라도


    이 지옥의 모든 악몽과 상처와

    생이별 사이별과 모욕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또 바보 같은 신앙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사람들이 여지껏 기도하고 희원했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한 말하리라 이 인생을 훌륭했다고

    나는 이곳에서 말을 걸고 나에게 귀를 기울여줄 사람에게는

    입술에는 다만 감사하다는 이 한마디를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이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특별판 137p



    인민


    인민이란 지나치면서 문득 입에 올리는 말이다

    입에 올리자마자 사람들은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나무딸기 속의 검은 열매와 같다

    사람들은 또한 근심 속에서 그 열매를 따러간다


    빙빙 돌아가는 차는 원래대로 있을 수 있다

    옷은 또 다른 양재사가 갖고 올 것이다

    인민이란 이전에 도미에가 그렸듯이

    언제나 덜거덕덜거덕 흔들리는 삼등열차인 것이다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각자가 하찮은 꿈을 꾸며

    무릎과 무릎을 맞대면서 고독하게 주위에 정신을 팔지도 않고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노래

    생기 없는 시선이 희미하게 떠돈다


    기차는 가고 인생도 기차도 미미하게 흔들린다

    종일토록 혹사당하고 손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완강한 팔과 못이 박힌 손과 주름 잡힌 얼굴

    담배를 피우고 먹고 자고 입는 것이 고작이다


    시간표에 맞춰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튀어나온 자갈에 부딪쳐 어깨를 흔들리면서

    밤에 그들은 일상의 눈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오만가지 생각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세상의 악을


    그들은 일하기 때문에 몸을 쉬게 하지 않느면 안 된다

    그것은 조금도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구두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구두는 매일 신는 것이라 갖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구두를 신고 기분에 들떠 젊은이처럼 밖으로 나간다

    마리여 생각해보라 우리들의 젊은 날을

    그대는 아직 꼬마아이를 낳기 전의 마리였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했기에 벌이도 좋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짜임새 좋게 진행된다

    아, 건널목의 가로대가 올라가고 기차가 달려간다

    맞은편의 정글이 반짝 눈을 뜬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인민은 집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을 체념한 인민이란 과장된 말이다

    길을 걷는 사람을 걸음걸이로 헤아리려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재 속의 불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편지를 대충 훑어보고 알맹이가 될 말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중략)


    노동은 교체되고 교체되며 밤까지 계속된다

    밤의 노예 부대를 비추는 탐조등의 빛 속에서 춤추는 모래 먼지

    악몽처럼 한 무리에 이어 다른 무리가 이어진다

    그것은 8분의 3박자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다와 같다


    이 인간의 투쟁의 엄청난 장대함

    그곳에 인간의 자식은 주사위처럼 내던져진다

    사람들의 몸과 힘이 제아무리 녹초가 되더라도

    인간의 자식은 여전히 노동하고 착취당하는 것이다


    오, 인민이여 그대는 타인을 위하여 생활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대의 생명은 손가락 사이에서 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대는 그리스도이면서 동시에 사도들인 것이다(중략)


    사람들의 입술도 보리 이삭도 똑같은 노래로 술렁이게 하자

    오 해뜰 무렵 군중이 대지를 밟을 때 울리는 소리여

    인민들이여 그대들을 지도할 사람을 선출해다오

    바른말과 확실한 걸음걸이를 선택해다오


    모든 안나푸르나가 그 눈봉우리로 우뚝 솟아나게 하자

    이 모든 꿈이 커다랗게 자라나는 것을 보아다오

    이전에 우리들은 노래했다 '당은 그 인민을 지도한다'고

    이제 그대 정복자들이여 말해다오 "나의 당이여" 하고


    당 그것은 대문자로 씌어진 말이다

    '당은 그 인민을 지도한다'는 말을

    내가 입에 올리자마자 다른 태양은 개기일식이 되고

    또 다른 태양은 내게는 무연한 것이 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특별판 141p



    말뿐의 사랑이 아닌 사랑


    아, 숨이 끊어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저 나약한 어둠의 장소에 있다면

    사람들은 다만 그림자에 불과할 뿐

    어떻게 어떻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한 수 있을까

    그런 가슴을 물어뜯는 고통을 무어라 이름 붙이면 좋을까


    저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손짓이며 몸짓으로

    그대가 머리를 땋을 때와 같은 동작으로

    내 앞에 나타나주었기에

    나는 다시 태어났고 노래가 끓어오르는 세계를

    나는 또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엘자여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의 청춘이여


    오 포도주처럼 감미롭고 강렬한 그대

    창에 쏟아지는 햇살과 같은 그대

    그대 덕분에 나는 되찾았던 것이다

    이 세계의 사랑을-깉은 갈증과 굶주림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우리들의 이야기를

    그 끝까지 살아서 확인할 수 있는 힘을


    마치 기적과 같다 그대와 함께 있는 것이

    그대의 빵 위에서 반짝이는 빛은

    그대 주위에서 회오리치는 바람은

    지금도 그대를 보고 있으면 몸이 떨린다

    옛날의 나를 닮았던 젊은이가

    최초로 밀회를 할 때처럼


    언제까지고 그대에게 익숙해지지 못하더라도

    제발 나를 꾸짖지 말아다오

    사람들은 불꽃에 익숙해질까 말까 하는

    그 순간에 불꽃은 그들을 태워버린다

    만약 내가 검은 구름 따위에 친숙해지기라도 한다면

    나의 영혼의 눈을 도려내다오


    최초로 그대의 입술에 닿았을 때

    최초로 그대의 소리를 들었을 때

    나무는 그 뿌리까지 흔들렸던 것이다

    쭉 뻗은 가지에서 숲의 꼭대기까지

    문듣 스쳐가는 그대의 옷에 닿았을 때와

    지금도 여전히 최초의 그때와 같다


    이 설레는 무거운 과실을 따다오

    벌레에 먹힌 그 반쪽을 던져버려다오

    헛되이 보내버린 30년과 그 후의 30년

    그대가 물고 먹을 수 있는 정도

    그것이 그대에게 내민 나의 인생인 것이다


    나의 인생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대를 만났던 그 순간부터

    그대는 그 팔로 막아주었다

    나의 광기가 질주하는 흙탕길을

    그리고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저 인간의 선의만이 씨앗을 뿌리는 나라를


    그대의 술은 나의 어지러운 마음에서

    오만가지 오열을 제거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크리스마스에 타올랐다

    그대 손가락 속의 노간주나무 과실처럼

    나는 질실로 그대의 입술에서 태어났다

    나의 생활은 그대로부터 시작된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특별판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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