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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할 땐 뇌과학> 또 우울해져도 깡이 생기는 책
    독서일지 2018. 6. 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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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권을 읽는다고 해서, 우울증의 정의를 안다고 해서, 왜 우울해지는지 또 해결책은 무엇이 있는지를 안다고 해서 우울증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우울해지더라도 자신감을 주었던 책을 떠올리고, 우울증을 '우울증'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의내릴 수 있고, '이 감정을 벗어날 방법이 있었지'라는 것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책 제목처럼 우울할 땐 뇌과학을 가볍게 공부해보자는 생각을 떠올리고,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하게 뜨면 다시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힘을 내보았습니다. <우울할 땐 뇌과학>이 다른 책들보다 좀 더 좋은 이유는 이론적인 뒷받침들과 함께 공감을 건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우울증의 하강나선에 빠지게 되면 우울한 감정이 뇌에 안정감을 주어 그 기분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음, 편하게 있고 싶구나. 손 하나 까딱하기 싫구나. 그럼 그래라."라고 내버려두는 깡이 생겼어요. 그런 깡이 뭐 어디 쓸 데가 있나 싶지만,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어 주변 공기가 점차 달라지기 시작하며 느꼈던 불안함에 비하면 깡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 좋은 책이었기는 하지만, 힘든 일을 겪은 후 아직 주저앉아 있는 분들께는 섣불리 추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 한 권 읽어 보세요."하는 말도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종종 무너져내리고 습관적으로 무기력함을 느끼는 분들은 '혹시 내 마음이 우울증인 상태가 더 편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 번 해보면서 이 책을 읽어보시길 조심스레 추천합니다.


     수십 가지 연구가 생활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특정 회로의 활동과 화학 성질을 실제로 젼화시킬 수 있음을 감동적으로 증명해주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회로들이 우울증을 유발하는지 알고 그 회로들을 바로 잡는 방법 또한 안다. 뇌 활동과 뇌 화학이 달라지면 우울증의 경로도 달라진다.


     소용돌이처럼 우리를 휩쓸어 늪의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하강나선이 작동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과 우리가 내린 결정이 뇌 활동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뇌 활동이 불리한 쪽으로 변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는 뇌의 부정적인 변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다행한 일은 대부분의 사람이 다양한 뇌 회로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하강을 멈추고 다시 상승하는 쪽으로 나선의 회전 방향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하강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시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정인 상태다. 다시 말해 뇌는 계속해서 우울한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너무 힘겹게만 느껴진다.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된다지만 운동할 기분이 아니다. 밤에 잘 자는 것이 도움 되겠지만 불면증이 방해한다. 친구들과 무언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데 즐거워 보이는 일은 하나도 없고 사람들이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 뇌는 그 상태에 붙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울증은 중력처럼 인정사정 보지 않고 밑으로만 끌어당긴다. 기분은 사발 바닥에 놓인 구슬처럼 어디로 굴려도 늘 아래로 굴러 내려오고 만다.


    -<우울할 땐 뇌과학> 중에서


     우울증의 주범은 뇌의 두 부위, 전전두피질과 변연계라고 합니다. 전전두피질은 생각하는 뇌 부위이고 변연계는 느끼는 뇌 부위입니다. 우울증은 이 영역들이 작동하는 방식, 서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문제가 생긴 상태라고 해요. 생각하는 전전두피질은 느끼는 변연계를 조절하는 책임을 맡고 있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기분을 점점 우울증의 하강나선으로 이끌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이 이 부위들을 작동하고 의사소통 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론적인 뒷받침들을 통해 편안함과 믿음을 가지고 책을 읽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려운 뇌과학 용어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그때그때 쉽게 설명을 해주고, 또 모르면 모르는대로 넘어가도 책이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변화시킬 수 있다는 책의 메시지를 믿어보기로 하고 읽어봅시다. 1부에서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2부에서는 생활에 구체적인 변화를 줌으로써 다양한 뇌 회로의 활동을 변화시켜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운동, 의사결정, 잠, 습관, 바이오피드백, 감사, 사회적 지원, 전문적 도움 등 8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뇌나 걸리지 않은 사람의 뇌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사실 그 어떤 뇌 스캔이나 MRI, 뇌전도로도 우울증을 진단할 수 없다. 우울증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진 뇌 회로의 부산물일 뿐이다.


     의지력, 활동 의욕, 기분을 향상시키는 세로토닌, 사고와 집중력,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증강하는 노르에피네프린, 쾌감을 증가시키고 나쁜 습관을 고치는 데 꼭 필요한 도파민, 신뢰감, 사랑, 연대감을 증진하고 불안을 떨어뜨리는 옥시토신, 긴장을 풀어주고 불안을 감소시키는 가바, 수면의 질을 높이는 멜라토닌, 고통을 완화하고 고양된 감정을 안겨주는 엔도르핀, 식욕을 증진하고 평온함과 안녕감을 증가시키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여러 심리학 책들에서 한두 개씩 알아왔지만 이 책 저 책 읽다보니 햇갈리기 시작한 용어들! 어렵지 않게 이런 것들이 있구나 훑어보면서 넘어갑니다. 머리아프려고 보는 책이 아니니 부담갖지 말자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사실 책을 읽다보니 뇌과학이 너무 재밌어져서 더 꼼곰하게 보게 되더라구요. 역시 우울할 땐 뇌과학입니다.


     책을 읽다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행복했던 때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슬픈 사건은 아무런 문제 없이 떠올릴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뇌 깊숙한 곳 편도체 근처에 자리잡은 '해마'가 그 원인인데, 해마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해마는 특히 감정이 실린 기억(처음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다거나 중학생 때 좋아하던 아이에게 했던 창피한 말, 작년에 갔던 멋진 스키 여행 같은)을 좋아한다고 해요. 우울증 상태에서는 해마가 역할을 잘 수행해내지 못하는데, 해마가 만드는 새 기억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읽었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것이 이렇게 어려웠던가>에서도 큰 슬픔을 겪은 사람은 해마의 크기 자체가 작아진다고 하더라구요. 슬픈 일로 인해서 작아진 해마가 새로운 좋은 일이 앞에서도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한다는 건 참 슬픈 일 같습니다. 새로 생길 좋은일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해마를 쑥쑥 키워봐야겠습니다.


     지금 이렇게 별일 없는 무난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또 다시 우울해질 때가 올 것 같습니다. 그럴 때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아 있더라도,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운동을 하고 햇볕을 쬐는 것조차 하기 싫더라도, 이 책을 읽으며 어려운 용어들도 재밌게 느껴지던 기분을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또 넘어질 미래의 저에게 한마디 하며 포스팅 마무리합니다.

    "내 감정이 특별해봐야 얼마나 특별하고 깊어봐야 얼마나 깊은 감정이겠나, 남들과 똑같지, 우주의 먼지같은 아주 작은 인간아~ 그래. 질릴 때까지 널부러져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햇볕 보고 운동 하고 사람들 속에 뒤섞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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