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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살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독서일지 2018. 6. 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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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저거 깔끔이 윤식이 아냐? 저게 어쩐 일이야? 상갓집에도 올 줄 알고?"

     "윤식이 많이 변했다.  얼마 전에 우리 외할머니 상 때도 왔잖아."

     "윤식이가 두번이나 초상집엘 왔단 말이잖아?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지."

     "수상한 새끼예요. 부조 내는 거 아까워서 직원들 경조사 한 번도 안 챙기던 놈이."

     "돌잔치, 결혼식, 초상집…… 한 번도 낸 적 없어요. 완전 독종이에요. 얻어먹는 게 90프로고 10프로는 뭐…… 어쩌다가 분빠이 할 때뿐이었죠."


     박해로 작가님의 소설 <살-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을 읽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윤식은 시골의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의 돌잔치, 결혼식, 초상집 한번 가지 않는 독종입니다. 그런 윤식이 어느날부터 동료들의 경조사(정확히 조사)를 챙기기 시작합니다. 윤식이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윤식의 삶에 끼어든 두 여자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부임해 온 동료 교사 영희와 무기징역수였지만 가석방 이후 다시 나타난 새엄마 금옥. 윤식은 자신의 삶에 다시 그림자를 드리우는 새엄마 금옥 때문에 연인이 된 영희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새엄마가 자신의 삶을 다시 망가뜨릴 것이라는 예감, 연인인 영희에게 자신의 삶의 무게를 함께 지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 여자는 감옥에 가게 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여자의 목표는 하나야.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 다니는 거지. 내 인생을 망치고 늙어 죽을 때까지 괴롭혀 피를 말리려는 속셈이야." "어떻게 보면 그 여잔 자기를 죽여주길 바라는 거 같아. 나도 무기징역을 받아 평생 철장 안에서 썩길 바라는 거 같다고." "정말로 그 여자가 인생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야? 나 같은 여자를 그냥 놓칠 거야? 나하고 결혼하고 싶다며?" 똑똑하고 여우같은 영희는 윤식의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희는 윤식에게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해주며, 사람 수명을 앞당길 수 있다는 신비한 무당 적산법사를 소개해 줍니다. 그리고 윤식은 적산법사가 시킨 의식을 행하기 위해 동료들의 조사를 챙기게 된 것입니다. 


     '아주머니, 저의 어머니도 지금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극락왕생하시고 저의 어머니를 좀 죽여주세요.'

     윤식이 고즈넉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황 선생은 망자에 대한 예우가 극진한 크리스천의 행실에 감동받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얼마나 모범적인 청년인가, 게다가 직장 내 소문도 안 좋았던 사람이. 하지만 윤식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외우는 건 주기도문이 아니라 무당이 가르쳐준 주문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4번의 상갓집 안에서 부적을 태우라는 적산법사. '조금만 힘들어도 참자. 영희는 내 인생을 바꿔줄 여자야.' '팔자를 바꿔줄 여자야' 서울에서 온 여자, 시의원의 딸, 윤식은 영희가 친구들에게 한 번도 자신을 소개시켜주지 않는 모습에서 '나 같은 촌놈과 사귀다니 부끄럽지?'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지만 절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새엄마는 독사 같은 여자지만 영희도 그에 못지않을 악녀라는 확신이 들었다. 곰보다 여우가 나은 것처럼, 악녀는 적군에겐 고통을 주는 존재지만 아군에겐 그 악성이 좋은 현실감각으로 작용한다.


     영희에게 소개받은 적산법사가 시킨 대로 상갓집에서 의식을 행하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첫번째 신물을 태운 날에 새엄마는 팔다리에 마비가 오고 머리가 아프다며 하루 종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두번째 의식을 행한 날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갑니다. "내 아들 윤식아. 잘 알아두렴. 이제 시작이라는 걸 말이다." 자신에게 피할 수 없는 공포같은 존재였던 새엄마. 두 번의 의식만 더 성공적으로 행하면 새엄마에게서 벗어나 영희와 결혼해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식을 행할수록 윤식의 주변에서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새엄마의 죽음에 얽힌 진실, 윤식의 실종, 윤식을 찾는 윤식의 누나와 형사 친구 종환. 윤식은 과연 어디로 왜 사라진 것일까요?


     <살-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읽으면서 작가님의 밀당에 제대로 놀아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이었던 윤식이 소설의 중반부에 사라지게 되고 윤식을 찾는 종환이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 같아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리얼리티 구축을 가지고 독자와 제대로 밀당하시는 작가님의 필력에 반전에 반전을... 이 소설 속에서는 무속신앙, 저주, 살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구나 생각하며 작가가 구축한 리얼리티를 믿으며 읽어가다가, 첫 반전에서 뒷통수를! '그래. 역시 저주가 있을 리 없지' 안도하며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궁금해하며 읽어가다가 마지막에 또 다른 반번으로 뒷통수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종환의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이 정말 정말 무서웠습니다. '저주'를 가지고 이렇게 무섭고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추천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르망 자동차, 화만나, 토토즐, 로열 디 등 시대를 설정하는 소풐들을 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고, 영화 <곡성>에서 느꼈던 오싹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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