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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단막극 <빨간 선생님> "금지된 것을 욕망하라!"
    드라마 2018. 6. 1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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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시골 여학교를 배경으로 한 '야한' 금서를 둘러싼 성장드라마 <빨간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KBS 2016 드라마 스페셜 방영된 단막극 <빨간 선생님>(유종선 연출, 권혜지 극본)은 2015년 KBS 극본공모 당선작입니다. 2부작 단막극 <개인주의자 지영씨>를 쓴 권혜지 작가님의 첫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권혜지 작가님의 작품이 아직 많지는 않지만, 소재와 캐릭터들의 개성에서 감동을 끌어내는 이야기들이 좋아서 얼른 미니리시즈로도 만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1985년 여름 경상도의 한 여고. "미자 니는 아나? 아가 어째 생기는동." 순덕(정소민)의 질문에 "아는 말이다, 남녀가 한 이불을 폭 덮고..." 순수한 여고생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 미자는 세상을 다 아는 표정으로 "하룻밤 푹 자고 인나야 되는기다."라고 말합니다. "맞나..." 미자의 말을 믿는 여고생들 뒤로 나타나 "맞기는, 맞기는, 맞기는, 뭐가 맞아. 맞을라고"라며 여학생들의 머리를 쥐어박는 변태남, 아니, 김태남 선생님(이동휘).

     태남은 순덕을 비롯한 모든 여고생들이 싫어하는 노총각 선생님입니다. 특히 순덕과는 앙숙인데, 사사건건 부딪히는 건 기본, 걸핏하면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태남의 목적이 촌지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사고 많이 쳐야겠다! 누구 부자되시구로." 학교에서 보는 것만 해도 짜증이 나는데, 하필 옆집에 살아 시내버스 안에서 마주치는 것도 흔한 사이. "선생님" 대신 "아저씨"라고 부르며 참는 말 없이 모조리 뱉고 마는 순덕입니다.


     "아들은 뭐 매랑 훈계로 다스리는게 와따지요. 제가 대신 패드릴까요?", "지는요 이쁘고 참하고 아 한 다섯쯤 숨풍숨풍 낳을 신체 건강한 여자는 다 됩니다. 식은 언제 올릴까예? 지는 이번 가을에 하고잡은데예" 여선생과의 맞선에서 지대로 물먹기 좋은 말들만 쏙쏙 골라 내뱉는 태남입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꿈꾸는 여자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태남의 손에 '장군부인의 위험한 사랑1'이라는 은밀한 제목을 가진 빨간 책이 들어오게 됩니다. 


     '오늘 나는 인형의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남편의 근사한 인형일 뿐이니까. 남편의 장식장에 진열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는 이 순간, 인형에게 숨결을 불어넣었다. 나는 장군의 부인이었고, 그는 신임 장교였다. 우리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도 부술 수도 없는 벽이 존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학생들 앞에서는 매를 든 당당한 태남이지만 실은 쑥맥 노총각인 태남. 그런 태남의 눈에 빨간 책에서 새어나오는 환한 빛은 태남을 다른 세계로 이끕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계속.' 하고 끝나버린 1편. 금서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오고 태남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책을 집.앞.에 버립니다. 역시 이런건 순덕이 주워줘야죠. 순덕에 의해 여고생들의 손에 넘어간 빨간책. 순덕과 친구들은 책방을 전전하며 2편을 찾아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결국 순덕이 2편을 쓰기 시작합니다.

     불시 소지품 검사로 인해 교실에서 빨간책 2편을 발견한 태남. 마침표가 없는 소설을 보면서 태남은 무심코 지나쳤던 밤늦게까지 글 쓰는 옆집 순덕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순덕이 마침표가 고장난 타자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태남은 평소 같았으면 또 매로 순덕을 다스리고 아버지 모셔오라고 윽박을 질렀을 테지만, 어쩜, 2편이 너무 재밌습니다. 그렇게 순덕과 여학생들, 태남 사이에는 빨간책의 선순환으로 맺어진 아슬아슬한 평화가 감돕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고 결국은 교감선생님에게 들키게 되는데요... '마침표'가 고장난 타자기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 과연 순덕은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요?


     순덕의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되면서 태남은 아버지 모셔오라는 자신의 윽박에 왜 순덕이 반항적인 눈빛으로 쏘아보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순덕의 수호천사를 자처하다가 오히려 더 구박당하고, 빨간책을 읽으면서도 장군 부인과 신임 장교의 사랑에 대해선 시큰둥했던 태남의 변화가 눈에 띄는 작품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데모에 참여하여 시대의 불의와 맞서는 순덕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태남의 캐릭터가 멋져보였습니다. 찰떡 캐스팅과 멋진 대본과 연출! 80분 가까지 되는 시간이 순삭, 재밌고 감동적인 단막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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