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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저승사자가 된 첫사랑이 찾아왔다.독서일지 2018. 3. 31. 21:58반응형
'열일곱, 찬란했던 첫사랑 6년 전 죽은 네가 내 곁으로 돌아왔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6년 전 죽은 희완의 첫사랑 람우가 어느 날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희완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희완은 "김나무"라며 얼떨결에 람우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데요, 그런 희완에게 람우는 여전히 내 이름을 '나무'라고 발음하는구나 하면서 너무 쌀쌀맞은 말투로 "앞으로 두 번. 두 번만 더 불러. 그럼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람우는 저승사자 명부에 희완은 일주일 후에 람우처럼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알려주며 자신의 이름을 두 번만 더 부르면 고통없이 지금 바로 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은 꽤나 많이 아프다고 말하는 람우, 그런 람우의 말이 더 아픈 희완입니다. 람우가 교통사고로 죽을 때 곁에 함께 있었던 희완이었기 때문에 그런 람우의 말이 상처가 되어 돌아옵니다. 6년이 지나도 내려놓지 못하는 죄책감을 안고 살던 희완은 차라리 람우와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이 마음은 더 편할거라는 생각에 람우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가 되어 돌아온 람우라도 너무나 생생한 람우의 모습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희완은 차근차근 자신의 삶을 정리합니다. 하지만 마땅히 정리할 것도 없습니다. 어쩌다 저승사자와 함께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가는 희완. '친구만들기', '일출보기' 너무나 소소한 것들입니다. 희완은 람우와 함께 일출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되고, 두 사람은 애써 잡아놓은 숙소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밤부터 일출을 기다립니다.
해는 뜨지 않았다. 네 기대가 무색하게도, 구름이 좀 많지 않은가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사위가 밝아져 오고 있었다. 너는 조금 실망한 것 같았지만 이내 웃었다.
"정말 걸작이지 않냐. 기껏 이 멀리까지 왔는데 유명한 관광지는 한 군데도 못 가 보고 제대로 된 맛집 하나 못 찾고 심지어 해도 안 떴어. 대박이다, 진짜."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중에서-
하필이면 그 흔한 일출도, 아무 날이든지 볼 수 있을 것 같은 흔한 일출 하나도 보지 못합니다. 밤과 아침 사이가 구름으로 가려진 시간. 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두 사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희완은 결국 람우의 이름을 두 번 더 불렀을까요? 부르지 못한 채 람우와 같은 고통을 받고 세상을 꺼날까요? 궁금함을 따라 읽어가다가 예상치 못한 반전, 그리고 찐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감동적인 책입니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황금가지 출판사의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 연재를 통해 계약, 출판된 최초의 경장편 소설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라는 책을 만났을 때 일반 소설책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웹소설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읽으면서 웹소설인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문장력이 너무 좋아서 설마 설마 했어요. 제목에 끌려 읽은 책은 종종 실패하기도 하는데 정말 기대 이상입니다! '웹소설의 가독성과 문학의 울림을 함께 담은 감성 마스터'라고 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당당하게 내놓을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어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재밌는 요소들이 정말 많은 책입니다. 소설이 끝난 후 작가의 말에서 서은채 작가님이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더라구요. 특히나 공감가는 부분은 람우가 저승사자가 되도록 이끈 저승 선배 캐릭터인데요, 좀 더 이야기가 부풀어가다보면 정말 중요한 서브 캐릭터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비밀을 안고 있을 것만 같은 캐릭터입니다.
책을 읽을 때, 사실 희완과 남우의 이야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렸어요. 이런 문장력과 흡입력, 궁금증을 계속 유발시키는 서사라면 26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70페이지가 조금 넘었을 때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당황했었어요. '뭐지? 희완과 람우의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고 다른 단편 이야기들을 묶어놓은 소설집이었던 건가?' 하는 당혹감이 생겼었는데요, 그 이후 쭉 이어지는 엄마, 아빠, 친구, 그리고 람우의 이야기에서 비하인드 얘기들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풀어내는 부분이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종종 중심 이야기와 너무 멀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더더욱 드라마로 각색되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서은채 작가님의 첫 작품인데, 쓰는 동안 얼마나 열정을 쏟아부었을지 작가 후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을 읽기 전까지 웹소설을 끝까지 읽어본 작품이 없습니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 연재중일 때 이 작품을 발견했더라면 연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웹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한 이유가 문학에서 느낄 수 있는 서사 아래에 깔린 감정들, 문장을 곱씹으면서 느끼는 감동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독성은 좋지만 읽고 나서 배부르지 않은 느낌? 그런데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웹소설이고 가독성이 좋지만, 발목을 잡아 잠깐 멈춰서고 싶게 하는 문장들이 종종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 본 느낌! 묵직한 감동을 가볍게 느끼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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