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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작가님의 열정!
    독서일지 2018. 3. 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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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초에 '밀리의 서재'에서 재밌을 것 같은 책들을 찾던 도중 <한복 입은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밀리의 서재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책입니다. 2014년에 출판된 책으로 한창 제가 책에 관심이 없었을 때 출간된 책입니다. 요즘엔 주로 예스24와 알라딘에서 전자책을 사서 읽거나 교보도서관에 대학교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책을 대출해서 읽고 있습니다. 신간이 쏟아져나오는 서점사, 그런 시간들 위주로 책을 사들이는 전자도서관에서 이런 보석 같은 책을 만날 확률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겠죠. 신간들을 마구마구 장바구니에 담아놓기 바빴던 저를 잠깐 반성하며, 보석같은 책들을 더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한복 입은 남자> 제목에 끌려서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처음엔 소설일까 추측 정도만 했었습니다. 소설이 아닌 인문학 도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 몰입력이 장난아닌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방송국PD로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가 되게 리얼하다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전개와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PD의 모습! 주인공 캐릭터가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긴장감과 너무 잘 어우러져서 작가님이 방송국 PD에 대해서 취재를 열심히 하셨나보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혹시나 작가님이 방송국에서 근무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이상훈 작가님은 KBS 공채 14기 출신의 PD입니다. 네이버 프로필에는 현재 채널A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나오네요. 직업에 대한 정보만 과하게 쏟아내서 이야기를 흐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캐릭터에 은은하게 배어있는 직업에 대한 지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소설 속에서 PD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 하나의 방송 소재가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찾아낸 것 같은 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 어쩌면 소설의 형식을 빌려 직접 겪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제보자를 찾아가면서 단서를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미스테리 스릴러를 보는 듯한 쫄깃함을 주기도 하구요, 그리고 진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충분히 팩트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메모해가며 읽게 되었습니다. 이상훈 작가님은 본업이 소설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9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한복 입은 남자>를 정말 재밌게 읽어서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집니다. 군더더기 없이 서사를 이끌어가면서도 또 어느새 감정이 몽글몽글 생기게 하는 좋은 소설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날 오전 11시, 그들이 탄 배는 좁은 해역으로 접어들었다. 함대가 처음 닿은 곳은 나폴리 공국이었다. 긴 항해 끝에 배가 나폴리에 닿았을 때 영실과 정화는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항구도시 나폴리는 지금껏 들른 수백 개의 항구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항구 주변은 온통 오렌지 나무로 도배돼 있었고, 도시의 집들은 깨끗하고 희었다. 흰 옷과 검정 옷, 가죽신을 조화롭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걸음걸이에 힘이 넘쳤고, 하나같이 호탕한 얼굴을 하고서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해주었다. 산허리 어딘가에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묻어두고 있다고 알려진, 도시 뒤편에 웅장하게 자리한 채 간헐적으로 연기를 내뿜는 베수비오 화산도 그들에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나폴리에서 열흘을 묵은 뒤, 교황이 산다는 로마로 이동하였다.

    -<한복 입은 남자> 중에서-


     요즘 우연히 읽는 책마다 나폴리에 대해서 나오더라구요! 유럽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이 나폴리이기도 해서 그저 반가웠습니다. 나폴리 4부작과는 또 다른 시대의 나폴리를 소설로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정말로 장영실이 역사에서 사라진 후 이곳 저곳을 거쳐 나폴리에 갔을 것만 같습니다. 나폴리 항구에서 내리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의 눈에는 다른 문물들이 어떻게 담길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들었던 의문, 소설의 이야기를 뒷받침할 팩트가 자료로 남아있지 않을까? 중간에 휴대폰을 켜서 검색해보고만 싶었지만, 책의 여운을 마음껏 느낀 후에 사실검증을 거치고 싶어서 꾹 참고 책만 읽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검색하며 사실들을 찾아가지 않아도 소설이 끝난 후 작가의 말에서 의문을 풀어주시더라구요. 이상훈 작가님이 강조한 것은, 결코 허구만 가지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장영실을 그렇게도 아꼈던 세종대왕이 가마를 잘못 설계했다는 이유만으로 장영실을 버리셨을까, 대부분의 죄인들이 어떻게 삶의 결말을 맞았는지 기록되어 있는데 왜 장영실의 그 후의 삶은 어떤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는 걸까. 이런 의문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국가분쟁과 여러 대립관계들. 결코 허구와 상상만으로 쓴 소설이 아니라는 작가의 말이 이 소설의 결말보다 더 결말다웠습니다. 정말로 이상훈PD님은 장영실이 사라진 이후의 이야기를 풀기 위해 10년을 바쳤다고 합니다. 소설 속에서 PD인 진석이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 더 파헤치지 못하는 안타까움, 뒤를 밟으며 따라오는 위협적인 존재들 모두 이상훈 작가님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이며,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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