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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을 읽고, 한 인생 살아본 것 같은 먹먹함독서일지 2018. 3. 9. 11:55반응형
(이미지는 책꽂이+라는 독서기록장 어플 화면입니다)
지난달 알라딘에서 10년 대여 행사로 장만하게 된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나폴리 4부작 세트를 읽었습니다. 2월 말부터 읽었는데 일주일 간 아주 푹 빠져서 읽었어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책의 결말을 떠나서 한 인생 살아본 것 같은 먹먹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처음 읽을 땐 '60년을 을 걸친 레누와 릴라의 우정이야기'라고 해서 두 사람 사이의 감동스러운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어떤 우정이 6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감동을 줄까 정말 많이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롤러코스터들이 있습니다. 우정과 질투와 응원과 허무함...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여러 감정들을 따라 읽었던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에서 '릴라'같은 친구라 지금은 연락을 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어쩌다 또 만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아가다 보면 젊은 한때 섭섭함과 불편함을 품었던 마음이 별거 아니게 느껴지는 날이 올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나폴리 4부작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려서 매끄럽게 넘기지 못 했던 둘 사이의 위기들도 생각나고 그래서 씁쓸해지고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감정이 왔다갔다 하면서 결국 위로가 되더라구요. 그러다 또 나도 누군가에겐 '릴라'같은 친구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지금 제일 친한 친구와는 별 트러블 없이 쿵짝이 잘 맞는게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기도 한 아~주 기묘한 책이었습니다. 책 읽는 뇌, 생각하는 뇌, 두 뇌가 따로 놀면서도 집중이 끊기지 않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나폴리 4부작의 순서는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입니다. 이북 세트로 사게 되면 가나다 순으로 진열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2권이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인 줄 알고 열었다가 당황했었어요. 1권 결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던지라 '왜 갑자기 딴 얘기야!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하며 놀랐습니다. 저처럼 완간 후 이북 세트로 장만해 읽으시는 분들은 전권 순서 한 번 확인하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눈부신 친구>는 성장소설 같아요. 4권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책은 1권 <나의 눈부신 친구>와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입니다. 특히 1권을 읽으며 기록해 놓은 몇 문장들을 읽어보면, 그 페이지가 드라마의 '지난 이야기' 장면처럼 머리 속에서 스르륵 지나가요.
모든 것이 아름다우면서도 두렵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참 쉽게 다치던 시대에 살고 있었다. 어쩌면 칠판에 그려진 그림을 지우듯이 나에게서 릴라를 지워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건물, 자동차로 붐비는 먼지투성이의 찻길은 인쇄가 잘못된 신문에 실린 사진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의 눈부신 친구> 중에서-
한 문장 한 문장 봤을 땐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유독 나폴리 4부작은 어떤 한 문장이 여러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어요. 국 끓이다 실수로 소금을 병 채로 퍽 쏟았는데도 삼삼하니 짜지 않는 느낌이랄까. 소금을 아주 왕창 때려부은 것 같은 막장of막장인데도 얼큰하고 시원하고 삼삼한 느낌, 두 사람의 인생은 왜 이리도 복잡할까 싶으면서도 결코 먼 얘기 같지 않은 느낌! 그들의 삶이 이미 마음에 새겨져서 아득하고 아픈 것 같습니다. 이북으로 읽어서 몰랐는데 교보문고 가서 우연히 종이책을 보니 꽤 두꺼운 책이더라구요. 그래도 읽기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를 겁니다. 추천합니다.
2권, 3권을 거쳐 4권을 읽을 때, 4년 전 다녀온 유럽여행이 생각났어요.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가 어디냐는 질문을 몇 번 들었었는데, 그때마다 나폴리라고 말했거든요. 로마에서 당일치기 투어를 떠나 마지막 일정인 포지타노에서 다시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하룻밤을 잔 후 나폴리로 이동했었습니다. 당시 유랑카페에서 나폴리에 대한 악명이 자자했던지라 겁을 많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나폴리를 안 가볼 수가 있을까 싶어 용기내서 다녀왔지요. 나폴리가 무시무시한 악명만큼 무서운 도시는 전혀 아니었지만, 정상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들의 쇼윈도가 돌에 맞아 쩍쩍 금이 간 채로 방치되어 있었고, 쓰레기들과 비닐봉지가 바람에 예쁘게 날리는 웃픈 밤을 선물해줬었어요. 호스텔에서 추천해준 관광지를 구경하고 피자를 먹고 왜 정이 가는지 모른 채 많은 정을 주고 온 도시였어요. 어떤 도시도 나폴리만큼 쓰레기가 예쁘게 날리진 않을 거야 생각하며 다음엔 꼭 반년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저의 기억에 레누와 릴라의 삶이 덧쓰여진 것 같습니다. 내가 보고 온 나폴리가 예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나폴리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짧은 여행이 주는 여운 위에 소설에서 받은 감명이 덧입혀져 나폴리 4부작을 읽기 전보다 훨씬 더 나폴리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꼭 가야겠습니다! 기본적인 정보들만 가지고 여행자로 나폴리를 걸어다니면서, 나중에 나폴리에서 반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득하게만 했었는데, 이젠 나폴리 중 '어디'에서 살아보지 생각하고 있네요. 릴라와 레누의 삶의 무대였던 나폴리. 무대의 수많은 배경 중 어떤 배경을 선택해서 살아보고 싶은지 고민하게 됩니다. 짠단짠단인데 삼삼한 맛을 원하시는 분들, 막장드라마만큼 재밌는데 또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고 싶은 분들!! 나폴리 4부작 꼭 읽어보세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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