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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을 팝니다> 페미니즘의 다른 얼굴을 담은 책
    독서일지 2018. 4. 1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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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을 팝니다>를 읽었습니다.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배신'이라는 말이 와닿는 책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유래없이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5년 쯤 전, 영화와 관련된 교양 수업을 듣다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은 어떤 특별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영화가 특별한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구나 생각하며 깊게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책의 초반부에 나온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와 벡델 테스트 부분은 더욱 페미니즘 영화라는 장르를 떠올리게도 했습니다. "첫째, 여성 등장인물이 두 명 이상 나와야 해. 둘째, 여성 등장인물끼리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 있어야 해. 셋째, 그들이 남자가 아닌 주제로 대화를 나눠야 해. 내가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영화는 <에일리언>이었어." 3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를 보겠다는 <더 룰> 속 등장인물의 대사를 읽으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의 지식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점점 생활 속으로 침투한 페미니즘이 부드러움이라는 전략을 취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질을 지키며 좋은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다른 얼굴을 한 시장 페미니즘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의 상업화가 완전히 없을 수는 없는 부분이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성을 겨냥한 제품 광고를 통해 비로소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수치심을 느껴 구매로까지 이어지게 한다는 부분은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여성을 겨냥한 광고들의 유형이 명령에서 선택으로 바뀌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살펴볼 수 있었던 부분이 좋았습니다. 1920년대의 광고 카피들은 전쟁터에 파견된 군인 남편을 둔 여자들에게 영웅의 귀국을 위해 최대한 젊음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말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이런 명령문들이 제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곧 어떤 물건을 구입하라는 제안에서 여러가지 물건 중에 선택하라는 문제로 바뀌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많은 브랜드들이 페미니즘 캠페인을 가장한 시장 페미니즘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캠페인이라는 명목으로 암묵적으로 페미니즘을 영업에 이용하여 결국은 그들의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인 젊음과 날씬함, 흰 피부을 여성의 자존감과 성공으로 동일시시키는 과정에서 더 큰 문화적 편견을 만들어내었고, 진정한 페미니즘의 성공은 브랜드 매출의 하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역설을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바디로션, 페미니스트 에너지 음료, 페미니스트 티셔츠 등을 만들어내는 업체들이 굳이 지금의 사회를 변화시켜서 자신들의 사업을 스스로 끝장낼 이유가 없다는 부분에서 그동안 쉽게 지갑을 열었던 일을 떠올려보며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 책 전반에 걸쳐 제기하려고 했던 문제의 핵심은 페미니즘 운동이 체제를 바꾸려고 하는 데 반해 시장 페미니즘은 개인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조력자인 시장 페미니즘의 목표는 체제의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발랄한 태도로 그 개인들을 위한 상업적인 해결책을 나눠주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재미없는 문제를 중심에 놓을 수도 있지만, 당신의 힘을 아껴서 당신 내면의 전사에게 전해주는 편이 훨씬 쉽지 않겠는가? 시장 페미니즘은 우리가 이전 세대의 삶을 규정했던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의 잔재가 하나도 없는 하얗고 깨끗한 바닥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시장 페미니즘은 우리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연애에서, 리더십에서 벽에 부딪친다면 그것은 젠더 때문이 아니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그것은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감을 얻고, 때로는 라이프코칭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시장 페미니즘은 말한다.

     아무도 페미니즘 노래를 부르지 않고, 레드카펫에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지도 않고, 할머니 팬티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새기지 않게 된 후에도 페미니즘이 의미 있는 단어이길 바란다.

     시장 페미니즘은 평등을 매력적이고, 섹시하고, 멋져 보이게 만들었다. 시장 페미니즘은 일상 속의 행동과 실천을 '대담한 페미니스트 선언'으로 바꿔놓았다. 시장 페미니즘은 특별할 것 없는 연예인들에게 매력적인 특징을 부여했다. 시장 페미니즘 덕분에 테일러 스위프트는 한 무리의 아름다운 친구들이 항상 우리 편에 서 있다는 것이야말로 성평등의 정점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시장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우리는 별다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는 현실 속 여성들의 노력에 관심을 두기보다 NBC 텔레비전의 인형극 <머핏쇼>의 페미니스트 주인공들을 찬양한다. 시장 페미니즘은 사람들에게 슬로건 티셔츠와 '나를 위해 구입한' 하이힐로 그럴싸하게 치장하면 페미니즘이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팝니다> 중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크게 화두되고 있고 여성혐오와 동시에 남녀역차별이 팽팽히 맞서는 요즘, 이것을 이용해 돈을 버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누가 페미니스트라더라, 아니라더라 왈가왈부하는 페미니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한 분들, 브랜드들을 통해서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다른 관점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 <페니미즘을 팝니다> 읽어보시면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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