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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밌는 소설 <예테보리 쌍쌍바> 선수의 스뽀오츠 정신
    독서일지 2018. 6. 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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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 작가님의 <예테보리 쌍쌍바>를 읽었습니다. 이렇게나 재밌는 소설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다니! 읽는 내내 키득키득 거리다가 '나는 선수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작가 소개에서부터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었는데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나서 다시 보니 박상 작가님, 역시!! 선수십니다.


    박 상


    2006년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이라는 단편소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

    첫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출간한 뒤

    더욱 주목받지 못함.

    야심차게 중간문학을 표방한 첫 장편소설 『말이 되냐』를 출간한 뒤

    비로소 대중과 평단의 중간에도 못 끼는 작가가 됨.


    오기와 근성과 록 정신과 찌질함으로 두 번째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를 출간한 뒤

    새삼스럽게 다시 전혀 주목받지 못하게 됨.


     <예테보리 쌍쌍바>의 주인공 광택은 스뽀오츠(스포츠 아님) 정신으로 무장한 선수입니다.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광택은 자신을 바라보는 한 사내의 은밀한 눈길을 외면하기 위해 괜히 책을 집어 듭니다. 스웨덴의 극사실주의 무협 소설 작가 프레데릭 라르손의 장편소설 『예테보리 쌍쌍바』!


     주인공 스벤손은 예테보리란 도시를 배경으로 이백 년간 라이벌 관계인 가문의 에릭손과 이십 년 동안 싸웠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그때 마침 아이스크림 파는 상인이 지나가는데 둘은 그 사람을 불러 쌍쌍바를 사서 나눠 먹으며 긴 투쟁 관계를 청산하고 친구가 된다.


     소설에 몰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잔을 비울 때마다 사내도 잔을 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광택입니다. 오랜 선수 생활이 뒷받침하는 육감! 이런 의미 없는 경기는 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모락모락 찐 달걀 같이 피어오르는 이 호기심은 무엇... 다시 잔을 채우고, 비우고. 슬쩍 쳐다보다 사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혹시 선수인가?'


     광택에게 '선수'라는 단어는 무슨 의미인지, 스웨덴(작가가 과연) 무협 소설(을 쓸지;) 『예테보리 쌍쌍바』는 광택의 선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광택의 첫 선수생활 이야기로 거슬러 가봅시다. 학력고사장에서 뻔한 결과를 예상하고 도전조차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날, 아버지는 밥상을 엎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광택에게 앞으로의 밥벌이는 스스로 하라고 합니다. 광택이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은 세차장입니다.


     선수 모집 : 초고속 손 세차장. 숙식 제공. 능력에 따른 연봉 협상


     '선수'라는 단어에 끌려 세차장에 면접을 보러 간 광택. "신광택. 이름부터가 이 분야에서 크게 될 놈인 것 같군." 첫눈에 광택이 선수임을 알아본 원식은 광택을 선수로 받아줍니다. 그렇게 시작한 선수 생활. 하지만 세차원과 대학생, 사회인과 학생의 틈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차친구 현희에게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헤어지자. 이제 우린 같은 방향으로 가기 틀렸어."

     현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한 모금 남은 핫초코를 입가에 주르륵 흘렸다. 헤어지자는 말은 참 뜨겁고 수습하기 어려웠다.


     쁭쁭쁭 이쁭이 현희와의 이별, 세차 5분 신기록 달성. 광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별을 극복하고 선수가 되어갑니다.


     팔다리의 근력이 늘자 빠른 걸레질이 가능했고, 요가를 병행하자 상당한 유연성이 생겼고, 식습관을 개선해 몸을 가볍게 만들자 순발력이 높아 졌다. 그리고 멘탈을 조절했다. 세차는 대표적인 멘탈 스포츠였다. 거만하게 자통차 키를 던지며 하인 대하듯 지랄하는 손님들에게 심리적 데미지를 입지 않을 돌부처 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서 강한 인내심도 필요했다.


     나는 곧 스뽀오츠 정신이란 게 무엇인지도 생활에서 체감하게 되었다. 지하철 계단을 걸어서도 힘들게 오르던 걸, '나는 계단 오르기 선수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빠르게 뛰어오르면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스뽀오츠 정신을 발휘하면 깊숙한 이대 입구 지하철역에서 계단을 이용해 끝까지 올라가도 숨이 차지 않았다. 신비한 체험이었다. 딸기잼 뚜껑이 안 따질 때도 뚜껑 열기 선수라고 생각하고 힘을 끌어올리면 손에 강한 에너지가 생기면서 금방 열려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인드컨트롤의 신비인지 그냥 내 팔다리 힘이 육체노동으로 세진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스뽀오츠 정신이란 게 진짜 존재한다고 믿기로 했다.


     하지만 선수에게 곧 시련이 닥치고 부상으로 인해 첫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세차' 종목의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선수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건 '배달'이라는 종목. '빠른 건 멋지다. 더 멋진 건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라는 표어가 걸린 중국집입니다. 선수의 태도를 유지하는 자신에 비하면 기초도 되어 있지 않아 보이는 노랑머리. 광택은 노랑머리와 어떤 놈이 더 빠른지 대결을 합니다. 오직 스피드만을 생각하며 장애물들을 헤치고 배달 온 집에 짜장면과 짬뽕을 내려놓는데, 불안합니다.


    "죄송하지만 젓가락을 안 가져왔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선수끼리 왜 이래? 하는 표정이었다. 정확하게는 속도만 좇는 인생이 간과한 것들에 대한 증거를 포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밀려오는 패배감에 사로잡힌 내 진지한 표정 앞에서 다시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선수끼리 그럴 대도 있다는 걸 선배로서 충고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럼 얼른 요 앞 슈퍼에서 사 와. 식으면 돈 못 줘."


     결국 노랑머리와의 결투에 패하게 된 광택은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네? 친선게임 한 판 졌다고 그만둬야 합니까?" 소속팀에서 방출당했다는 패배감, 오직 스피드만을 생각하며 달려온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옵니다. 광택은 그런 마음들을 안고 슬럼프 속에서 소설의 첫 장면인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허름한 아저씨'에게도 결국 지게 되었습니다.


     "미안하오. 아직 애송이구만."

     그의 목소리는 따뜻한 듯하면서도 장중했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포스를 잃지 않은 어투였다. 처음부터 이 남자의 목소리에 좀 더 유념했더라면 만만치 않은 내력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럼 감히 도전하지도 않았을 거다. 겉으로 판단해서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구나. 세상엔 왜 이렇게 고수가 많은 걸까.

     날라리 같았던 노랑머리에게 졌던 일도 그렇고, 허름한 동네 아저씨에게 진 것도 그렇고.

     어떤지 살아가는 일과 승부를 벌이는 짓에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다시 포장마차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몹시 아팠다.

    (...)

    배달원으로서의 선수 생명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기왕 오르려 했던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술 때문에 멘탈이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구제금융 때문에 사회 또한 의욕이 무너져 있었다. 선수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없었고 나 역시 안일했다.

     나나 세상이나 서로 활기차게 승부를 펼쳐볼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후에도 광택의 선수생활은 계속됩니다. 중국집, 생수 회사, 도서 총판, 레스토랑을 거치며 쌓이는 건 때려치우는 경험과 경력들. '나는 결국 아무 이유 없이 때려치우기도 하는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때려치는 동작과 멘크도 선수답게 나날이 발전했다.' 세차로 속도를 겨루고, 배달로 속도를 겨루고, 설거지로 속도를 겨루고... 광택의 선수생활은 나와 세상이 서로 흥미를 잃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경기에는 '겨루기'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버티기'라는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나는 아버지의 긴 연설을 들으며 그가 그때 밥상을 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나이 예순에도 멍청한 아들을 위해 여전히 한계를 극복하며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게 끔찍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세차원이 되자 아버지는 다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죽자 사자 컴퓨터 학원을 다닌 끝에 그 방송국에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아직 잘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한계를 극복하고 그라운드에 남은 선수구나. 정년퇴직을 해야 하지만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계약직으로 여전히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버틸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선수 생활에 감정이 이입되자 미안한 마음에 코끝이 찡했다. 내가 빨리 멋진 선수로 빛을 봐서 아버지를 쉬게 해주고 싶다.


     버티는 것, 견디는 일 역시 선수의 중요한 자질임을, 스스로 겪어본 후에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남들과 똑같은 건 싫다는 이유로, 모의고사 성적이 전국 십일만 구천삼백 명 중 십만 팔천 이백 등 즉, 최하위권이라는 이유로,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이유로 학력고사라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던 자신이 비겁했던 것임을, 선수답지 못했던 것임을, 스뽀오츠 정신이 부족했던 것임을. 학력고사라는 경기에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말에 밥상을 뒤엎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테보리 쌍쌍바>, "당신은 선수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무서운 책입니다. 스뽀오츠 정신을 가지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또 만만치 않은 세상. 내가 미처 갈고 닦지 못한 기술을 걸어오는 세상. 인생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로 버티기 위한 지침서로 추천합니다.


    소설이란 쌍쌍바 같은 건지도 모름.

    마음먹은 대로 딱 떨어지질 않음.

    아마도 정확하게 쪼개지면 재미없을 거요.


    -이게 뭐니, 작가의 말 재도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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