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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어타운> 공동체의 이면에 대해 씁쓸함을 남기는 책
    독서일지 2018. 6. 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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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말한다. 베어타운은 이제 끝났다고, 해마다 점점 일자리가 사라지고, 계절마다 숲이 빈집을 집어삼킨다. 한때 잘나가던 시절의 영광도 잊혀진 지 오래,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 소리가 들리면 미소를 짓는다. 탕, 탕, 탕. 기온만큼이나 급속도로 추락하는 집값 말고는 남은 게 없어 보여도 그렇게 단 하나의 희망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견딘다. 탕, 탕, 탕.

    3월 초의 그날 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아직까지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직원 수를 자랑하지만 삼년 연속으로 '인원 효율화'(정리 해고를 그런 식으로 근사하게 표현하고 있다)를 실시 중인 공장. 소규모 경쟁자들의 씨를 말려버린 대형 슈퍼마켓. 허물어진 정도가 각기 다른 상점들로 가득한 길거리, 점점 더 조용해져가고 있는 공업지구. 한쪽에는 사냥과 낚시 코너, 다른 쪽에는 하키 코너가 있지만 별 볼일 없는 스포츠용품점. 조금 더 가면 나오는 '펠센'이라는 술집은 동네 주민들에게 얻어맞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경험해보고 싶은 관광객들이 찾기에 아주 좋은 행선지다.


    그녀는 베어타운에서 살려면 둔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래야 추위와 모욕, 양쪽 모두에 좀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십년이 지났어도 미라는 여전히 이 마을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그저 나란히 공존할 뿐이다.

    미라는 하키를 왜 좋아하느냐고? 그녀는 하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키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뿐이다. 그리고 남편이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고 마을 주민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여름이 단 한 번만이라도 찾아오길 꿈꾸기 때문이다.

    -<베어타운> 中에서


     프래드릭 배크만 작가의 <베어타운>을 읽었습니다.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문체 때문에 전작들과 비슷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베어타운>은 좀 길게 느껴졌습니다. 책의 중반부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3월의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없었고, 너무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베어타운에 생기는 균열에서 작가가 건네는 질문이 무엇인지,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베어타운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책이 중간중간에 나열되고, 또 그런 도시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하키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 열정에 동화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표지의 일러스트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는데 책을 읽을수록 점점... '이 망할 베어타운!'으로 바껴가더라구요. "당신들이 문제야! 종교는 싸우지 않고 총기는 죽이지 않아. 그리고, 똑바로 알아두라고. 하키는 지금까지 아무도 강간한 적이 없어! 그런데 누가 그러는지 알아? 누가 싸고 죽이고 강간하는지 알아?", "누굴 해치지만 않으면 되는 게 아니야. 입을 다물고 있어도 안 되지." '하키'에 모든 것을 걸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 발버둥치는 어른들의 모습과 그 어른들에 의해 키워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쇠락한 작은 마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어떤 마을에서 '하키'라는 글자를 빼고 어떤 다른 것을 넣어보는건 어떨까 하며 읽은 소설입니다. 작가의 전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브릿마리가 <브릿마리 여기 있다>의 브릿마리가 되었고, <브릿마리 여기 있다>에 등장했던 케빈이 <베어타운>에서 유망한 하키 천재로 등장했습니다. 베어타운의 단 하나의 희망, 탕-탕-탕- 희망의 소리의 주인공은 하키 천재 케빈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지고 살아가는 이 소년. 이 소년이 저지른 일이 과연 '하키' 때문일지, 어른들 때문일지 생각해봅니다.


     케빈이 거의 항상 그렇듯이 반 역사 시험에서 1등을 하고 집에 가서 50점 만점에 49점을 받았다고 하면 케빈의 아빠는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뭘 틀렸니?"라고 묻고는 그만이다. 에르달 집안에서는 완벽이 목표가 아니다. 표준이다.


     케빈이 열 살인가 열한 살이었을 때 그들 부부가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집안이 난장판이었던 적이 잇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욕을 했지만 얼마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만들어진 아수라장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아이의 엄마는 이내 패턴을 파악했다. 항상 똑같은 물건의 위치가 달라졌고, 똑같은 사진이 삐딱해졌고,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 조리 식품은 동시에 개봉한 티가 역력했다.

     케빈이 사춘기가 돼서 파티를 열기 시작한 이후로는 돌아와 보면 아이가 아예 집을 비워놓았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흔적을 지운 집이 그녀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다고 아빠에게 장담했을 때는 항상 마지막 날 저녁에 돌아와서 온 집 안을 어지럽혀놓아야 했다. 그래야 그동안 벤이네 집에서 잤다는 걸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케빈의 파티에 초대된 아이들과 그날 마야에게 벌어진 일. 하지만 중요한 경기를 앞두었다는 이유로 화살은 하키 유망주가 아닌 피해자 마야에게 향합니다. 하키 단장이라는 이유로 페테르는 마야에게 부모의 역할을 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변호사인 미라 역시 엄마로써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마야의 가족과 베어타운의 대립으로 인해 사실관계들이 왜곡되면서 소설의 초반부에 나왔던 베어타운을 묘사하는 글들이 점점 섬뜩하리만치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하키에 대한 열정으로 베어타운의 싸늘함을 중화시켜주었던 소설의 초반부와 달리 정말 베어타운은 미라의 말한 추위와 모욕으로 가득찬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더이상 둔감해져서만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 소설이 주는 결말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봐야겠습니다.


     페테르와 미라는 행복하게 아침을 맞는다. 웃으며 아침을 맞는다. 그들이 나중에 이날을 떠올리면 그걸 기억할 테고 그랬던 그들을 증오할 것이다. 생애 가장 끔찍한 사건들은 한 가족에게 그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게 무너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충돌하기 직전의 순간, 사고가 나기 전에 주유소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집으로 돌아와서 진단을 받기 전에 휴가지에서 한 마지막 수영. 우리의 기억은 밤이면 밤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문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하지만 당신은 남자답지 못하지 않아. 여러 면에서 아주, 아주, 아주 남자다워. 예를 들어 당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잖아."

     그는 그녀의 머리칼에 대고 대꾸한다.

     "당신도 아주 여자다워. 당신처럼 여자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어.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를 할 때 절대 믿으면 안 되잖아."

     그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이런 날 아침에도 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들에게는 아직 그런 축복이 남아 있다.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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