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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 끝에 철학> 청소의 역사에 대한 재밌는 얘기들을 들려주는 책
    독서일지 2018. 4. 2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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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며칠 청소를 게을리 해서 뇌세포로라도 빗질을 하고 싶은 마음에 <청소 끝에 철학>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청소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경건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하지만 강력추천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저처럼 청소의 개운함을 기대하고 읽으려는 분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 청소, 공간 등을 다루는 기존의 책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청소의 방법들과 상쾌함을 건네주는 책이 아닌, 정말 '철학'과 청소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청소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라 무슨 철학과 거대한 역사가 있을까 싶지만, 읽는 내내 이렇게 흘러왔구나 생각하며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청소가 주는 의미, 그리고 또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청소가 주는 의미에 대한 부분도 재밌었고, 마녀의 기원에 대한 부분은 반전에 놀라고 또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것 같지만, 청소기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시대에 우리나라는 과자 부스러기 등 바닥에 떨어지는 것들을 더 불편해했고 서양은 우유 등 쏟는 액체를 더 번거롭게 여겼다고 해요. 집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을 하는 서양에서 바닥의 먼지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만, 카펫에 쏟아지는 우유는 큰 불편함을 낳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도 거실에 카펫이 있었기 때문에 더 오래 전의 이야기를 하는가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부스러기는 슥삭슥삭 쓸거나 돌돌이 테이프로 슥슥 밀어버리면 끝이지만, 카펫이 없음에도 액체는 여기저기 가구 밑으로 흘러들어갈까봐 더 걱정이 되죠. 바닥의 청결을 중요시했던 어머니들의 모습을 읽으며 옛날엔 이랬구나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마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착한 마녀도 있지만, 동화나 여러 영화에서 마녀는 나쁘다는 이미지를 많이 비춰졌왔습니다. 그런데 '마녀'의 기원으로 거슬러올라가보면 반전이 있었습니다. 마녀가 늘 타고 날아다니는 '빗자루'가 비밀의 열쇠인데요, 낮은 계층의 여성들에게 청소는 뗄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집에서, 그리고 또 밖에서 직업으로 청소를 흔히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 여성들에게 없는 죄까지 뒤집어 씌우는 데 빗자루가 일조했습니다. 청소가 업이었기 때문에 빗자루를 늘 들고 다닐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흔히 옆에 두는 빗자루를 가지고 거짓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급기야 화형까지 시킨 것이죠. 이런 무서운 얘기를 읽으니 정말 동화에 나오는 마녀는 그냥 귀여운 마녀인 것 같습니다.


     주술을 쓰며 선량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을 여성으로 한정 지어 '마녀'라고 일컬었다. 서양의 마녀는 중세시대 후반부터 르네상스까지 종교개혁 시대의 산물로, 남성과 여성의관계에서 권력이 낮은 성별인 여성에게 드리웠다. 특히 여성과 청소를 결부해 비하하던 특징은 서양 마녀의 모습에도 나타난다. 이때 상징되었던 마녀들은 대개 빗자루를 타고 다녔다.

     지금이야 판타지 동화책 등에서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짖궂은 짓을 저지르는 인물로 가볍게 묘사되지만, 그 기원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무능력을 숨기기 위해 가장 힘없는 계층에게 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을 덮어씌운 비극이었다. 낮은 계층의 여성들에게 청소는 임무였으므로 그들은 빗자루를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여성들이 쓰는 청소 도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 재산을 몰수한 후 고문하고 화형까지 했던 잔인함은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역사적 만행이었다.

    -<청소 끝에 철학> 중에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와 서양은 집구조가 달라 '청소'를 하는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방식의 차이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청소가 풍기는 뉘앙스도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렇게 어질러 놓느냐는 말을 흔히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러면 알레르기가 심해진다" 또는 "나중에 물건 찾을 때 어떻게 찾으려고 하느냐"라는 식으로 꾸중의 방향이 우리와 다르다고 합니다. 저자가 미국에 살 때 함께 사는 아이에게 "누가 보면 어쩌려고"라는 느낌으로 말을 했더니, 아니는 혹시 우리집에 누가 오느냐고 물었다는 웃긴 이야기도 실려있습니다. 공간과 청소가 생활방식과 대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재밌었습니다.


     왜 제목이 <청소 끝에 철학>인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무능함을 감추기 위한 권력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빗자루를 이용해 무시무시한 마녀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고, 청소에 대한 책 속에서 마녀의 기원을 알게 되어 신기했습니다. 무엇보다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면서 '청소에 대해 이런 부분은 전혀 생각을 못 했는데' 하는 부분들이 많아 진지하게 읽고 곱씹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정말 청소 끝에 사유를 할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곁에 있는 청소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다면 <청소 끝에 철학>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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