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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외국어> 아무튼 시리즈를 기대하게 하는 책!독서일지 2018. 6. 20. 14:29반응형
지난 월요일부터 이번주 금요일까지 알라딘 ebook 격쿠 기간입니다. 5만원 이상 15000원 쿠폰, 3만원 이상 9000원 쿠폰 등 격한 적립금을 마구마구 뿌리고, 6월 2차 굿즈에 셜록 선풍기와 셜록 부채가 등장하고... 지름을 참을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장바구니가 헛헛한 것 같아 뭘로 좀 채워볼까 하는데 눈에 띈는 시리즈가 있었으니.. '아무튼 시리즈' 입니다.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X제철소X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실험적인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12권까지 출시되었고,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라고 하네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엿보고 싶은 마음 듬뿍 만들어내는 슬로건으로 앞으로 어떤 책들이 이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 한 권 슬쩍 장바구니에 담아본 <아무튼 외국어>가 무지무지 재밌었기 때문에 '아, 그냥 12권 세트 살걸..' 하는 후회가 스멀스멀 피어납니다. 전자책 한 권 정가는 7,700원인데, 12권 세트는 무려 49,500원, 500원 살짝 추가해서 격한 적립금 먹이면 35,000원입니다. 남은 11권 계산해 봐도 세트를 사는게 훨씬 이득이라 금요일 밤 11시 50분까지 계속 고민해봐야겠지만, 고민은 전자책 다운로드를 늦출 뿐이라는 명언이 있죠. 딱 내일까지만 고민해보고 결단을 내려야겠습니다.
<아무튼 외국어>가 재밌었던 이유는, 외국어 덕질(?)하는 조지영 작가님의 유쾌한 글솜씨와 함께 '3개월 정도, 기초 외국어 책의 5장 이상을 넘지 않는' 분야의 전문성(?)에서 오는 강력한 포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튜브나 관찰 예능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에세이 시리즈,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어떨지 기대하게 됩니다.
불어를 전공했고, 여행가서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영어를 구사하고, 각 외국어의 특징들을 두루두루 알고 있는 조지영 작가님에 비빌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외국어 책을 사서 끝까지 풀어본 건 토익 문제집 밖에 없는, 그리고 일본어 학원 몇 달 쯤 다녀봤을 1/3에 속하는(중국어 학원도 두달 다녔음), 1개국어에 유창한 저로서 많은 공감이 가더라구요. 원래 외국어 입문서는 5개 챕터 정도만 보고 뒷부분은 깨끗하게 보존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감하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어 책은 사본 적이 없는데 조만간 사서 5개 챕터까지 또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
고백하자면 내게는 '외국어 3개월 정도만 배워보기'라는 취미 생활이 있다. 심지어 전혀 모르는 말인데 독학을 하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사다가 그냥 무작정 들여다보거나 오가는 출퇴근길에 괜히 들어보고 마는 식이다.
나의 외국어 배워보기는 사실 목적이 없다. 『수학의 정석』을 사면 집합 부분만 열심히 보고 나머지 영역은 열어보지도 않았던 것처럼, '혼자서 배워보는 외국어'류의 책들도 거개는 인사와 날씨와 숫자와 계절 정도가 지난 다음의 페이지는 완전 새 책 같다.
우리에게 없는 말들은 곧 우리에게 없는 개념들이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했고, 후일 러시아어 통역을 오래 했던 일본의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는, 열네 살에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열등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생전에 술회했다. 심지어 체코에서는 '어깨결림'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으니, 말이 없으면 신체 감각도 없게 마련이라고 했다(체코에 가고 싶다).
-<아무튼 외국어> 중에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를 깊게 또는 얕게 배우면서 작가가 느낀 각 언어의 특징들이 재밌는 추억과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책 곳곳에 있습니다. 조승연 작가님의 <플루언트>를 재밌게 읽었었는데,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천재 작가의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와는 다른 느낌! 얕은 외국어 공부라도 '취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조지영 작가님만의 매력이 흘러넘치는 책입니다. 독일어는 거의 본 적도 없고, 가끔 봤던 독일 영화에서 배우들이 말하는 느낌이 어땠는지도 잘 안 떠오르더라구요. 프랑스어 특유의 발음과 느낌들이나 중국어, 일본어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봤던 것처럼 엉터리로라도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고, 스페인어의 열정적인 느낌과 유쾌함도 옅게나마 떠올릴 수 있겠는데, 독일어는 도무지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찬찬히 책을 읽다보니 '아, 독일어는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서 서점으로 가서 괜히 독일어 책을 뒤적뒤적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학교 다닐 때 불문과 옆에는 당연히 독문과가 있어서 언어도 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나도 비슷하지 않아 도리어 신기했다. 독일하고 프랑스하고 괜히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구나(?) 싶은 게 심지어 독일어에서는 해가 여성이고 달이 남성이다.
'독일=재미없음'이라는 인식은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라디오에서 <맨해튼의 선신>을 듣고 동네 술집에라도 모여서 "어제 라디오 들었어?"하면서 드라마 얘기를 나눴을 옛날 독일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이상한 흥미가 돋았다. 진지함을 재미로 소비할 수 있는 성향이랄까, 문화랄까 그런 국가적(?) 특징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궁금했다. 독일 책들은 재미없었지만 그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을 독일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를 호감을 느꼈다. 어렵고 복잡하고 깊고 진지한 것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같았다.
재미없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좀 알아볼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보디 독일어는 프랑스어만큼이나 쓸 일이 없었다. 과연 라이벌들 답다. (...) 그런데도 독일어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쓸모 없는 진중함, 효용을 바라보지 않는 진실함 같은 것, 1+1=2처럼 딱 떨어지는 에누리 없는 말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아무튼 외국어> 중에서
불독전이냐, 독불전이냐, 체육대회 이름을 두고 아웅다웅하면서도 뭉칠 땐 똘똘 뭉쳤다는 대학 생활 이야기들도 재밌었습니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스페인어 교수님이 A 학점을 잘 주신다는 소문에 수강했지만, 한 학기 만에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 하셔서 A 학점을 받지 못한 슬픈 이야기까지... 일본어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만큼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갖고 있는, 책꽂이에 뒷부분이 깨끗한 일본어 책과 함께 꽂아놓은 제 모습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라고, 중국어 성조의 벽 앞에 무너졌었는데, 성조의 벽을 넘으면 잠깐이나마 중국어가 친한 척 손 내밀어 줄거라는 말에 '다시 중국어나 시작해볼까' 마음이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괜히 독일어 책 주변을 어슬렁거려보고 싶고, 본가에 놔둔 프랑스어 스페인어 책을 엄마한테 보내달라고 할까 싱숭생숭 해보고, 그러다가 아무튼 그냥 책이나 읽자 싶었습니다. 전공과 다른 쪽으로 취업을 하고 대학원을 갔지만, 새로운 외국어를 보면 관심이 가는 마음은 불문과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때 모습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조지영 작가님을 만들고 조지영 작가님이 만든 세계를 엿볼 수 있어 재밌었던 책, <아무튼 외국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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