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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시> 호러소설이 이렇게 슬퍼도 되는 건가
    독서일지 2018. 7. 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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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네가와 고타로의 『야시』를 읽었습니다. 얼마 전에 YES24 페이백 이벤트로 쓰네가와 고타로 작가의 <금색 기계 : 신이 검을 하사한 자>를 읽었는데, 같은 기간에 페이백 이벤트를 했던 『야시』는 이상하게 끌리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았었어요. 표지가 기괴스럽고 무서움(ㅠㅠ) 데뷔작이 무려 제1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했다하지만 무서울 것 같아서 읽지 않았는데, 리디북스 무료책으로 풀려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무서움보다 피할 수 없는 것은 믿고 읽는 리디북스 무료책이라는..


     『야시』에는 호러소설대상을 안겨준 데뷔작 「야시」, 그리고 수상 후 처음 쓴 작품 「바람의 도시」 두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단편소설은 아니고 중편 쯤 되는 분량의 두 이야기. 호러소설이라 낮에 읽으려고 했는데 자꾸 밤에 읽고 싶은 몹쓸 호기심.. 결국 어제 밤에 읽어보았는데, 무섭기는커녕 신비롭고 슬픈 이야기들입니다. 현실세계와는 다른 무엇으로 채워진 곳을 여행하는 영구방랑자들의 이야기. 「바람의 도시」에서는 '고도'라고 불리는 세계, 「야시」에서는 무엇이든 사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밤 시장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영구방랑자들이 떠다니는 '고도'와 '야시'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각각 다른 두 이야기의 배경이 되지만, 왠지 고도에 머물다 간 요괴가 야시에서 장사를 하고 있을 것 같고, 야시를 다녀간 손님이 고도의 어느 찻집 주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평생에 걸쳐 세 번만 갈 수 있는 야시장, 하나 둘 사라져가는 고도의 출구... 게임을 할 때 워프를 통해 다른 세계를 넘나들 수 있듯이, '고도'와 '야시',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경계가 흐려질만큼 푹 빠질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말처럼 어젯밤 꿈은 고도나 야시 어디쯤 머물길 바랬지만 그냥 쿨쿨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바람의 도시」는 일곱 살 때 아빠와 함께 벚꽃 구경을 갔다가 아빠를 놓치고 길을 잃었던 곳, 수많은 꽃놀이 나들이객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던, 더 이상 벛꽃놀이 온 공원이라 할 수 없는 기묘한 곳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나 혼자 집을 찾아왔던 주인공이, 열두 살이 되어 친구 가즈키와 함께 다시 그 길로 들어서면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일곱 살 때 걸었던 그 길, 그 후에도 학교와 집을 오가며 수없이 보았지만 기묘한 느낌에 다시 가보지 못했던 그 길이 일곱 살 기억 속에서 만들어낸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서 기분이 좋고, 또 혼자가 아니라 친구 가즈키와 함께이니 무섭지도 않습니다. 주변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을 때, 두 친구는 한 청년을 만납니다. 고도에서 태어난 고도를 여행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러니까 고도를 이용해서 여기저기를 천천히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거지."

     "고도?"

     "이 길 말이야. 이름이 여러 개지. 고도, 귀신의 길, 죽은 자의 길, 혼령의 길, 나무그림자의 길, 신의 통행로."


     고도로 들어왔던 출구를 잃은 두 아이는 청년의 도움을 받아 이 곳을 나가기 위해 함께 여행을 하게 되는데요, 청년과 악연이 있는 듯한 고모리에 의해 가즈키는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죽은 가즈키를 살리기 위해 비의 사원을 향하는 길에서 듣게 된 청년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는 청년의 운명, 고도에서 태어나 고도를 벗어날 수 없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풍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호시카와는 얼굴을 낑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그럴 수 없을 거다. 너는 고도에서 태어난 아이니까."


     자신을 보살펴주던 호시카와가 간직하고 있던 '열입곱 살 소년의 죽음'이 실린 신문 조각, 열일곱 살 소년을 사랑했던 여자가 그 소년의 뼈항아리를 들고 비의 사원으로 향했던 발걸음, 고도를 여행하며 들르는 찻집에서 듣게 된 자신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 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미아처럼 혼자 길을 걷고 있다.' 영구방랑자와 요괴들의 이야기가 슬픔을 물씬 자아내는 신비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야시」는 처음에 제목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어요. '여우'를 뜻하는 야시인가 싶었는데, '야시장' 할 때의 야시더라구요. 밤에 열리는 요괴들의 시장, 물건을 사기 전까지 시장을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주술이 깃든 곳입니다.


    "야시가 선다고 하던데."

    "그게 뭔데?"

    "시장 말이야. 온갖 것을 다 팔아. 가보면 알 수 있어. 가볼래?"


     유지를 따라 야시에 오게 된 이즈미. 오밤 중에 택시를 타고도 한참 들어온 이 숲속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말이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가본 적이 있다는 유지의 말을 따라 결국 두 사람은 야시에 도착합니다. 각종 물건을 파는 요괴들과 영구방랑자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어느 노신사와의 만남. 물건을 사지 않으면 절대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야시를 유지는 어릴 적 동생과 함께 이 곳에 왔었으며, 나가기 위해 물건을 살 돈이 없어 납치업자에게 동생을 팔았던 것을 이즈미에게 고백합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왔던 어린 유지는 동생이란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변한 주변과, 유지가 동생이 있었다는 착각을 한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기대어 죄책감을 떨치고 살았습니다. 다시 야시가 열린다는 것을 느끼기 전까지는요.


     오늘 저녁 시장이 선다.

     흙투서잉 유니폼, 혼자 주택가를 걸으며 바람에 수런거리는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그날이 온다. 무슨 날인데? 몰라. 정월이나 크리스마스하고는 정반대의 것. 훨씬 더 어두운 축제. 깨어나면 잊어버리는 꿈속의 괴이한 징조가 현실로 나타나는 날. 어떻게 그걸 알아? 그건…… 바람이 소년 대신 대답한다.

     네가 예전에 한 번 거기 간 적이 있기 때문이야. 동생을 팔지 않았니?

    (...)

     "응. 새나 벌레, 박쥐가 알려줘. 인간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 야시가 다가오고 있다고. 마치 비 내리지 직전처럼 야시의 조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스멀스멀 공기를 채우지. 그러면 이때까지 믿고 있던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나는 동생과 야구선수의 그릇을 떠올려. 그리고 두 귀를 손으로 막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것이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후회해도 이미 늦었어. 날씨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납치업자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는 노신사를 따라 점점 야시의 깊은 어느 곳으로 들어가게 되는 유지와 이즈미. 동생을 되찾으려는 유지, 동생을 팔았던 것처럼 자신을 팔려는 건 아닐까 두려운 이즈미, 그리고 물건을 샀음에도 야시를 나가지 않고 이들을 안내하는 노신사. 아침이 오지 않는다는 야시에서 드러나는 비밀들. 결말은 슬프다는 말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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