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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의 서>를 읽고 남은 문장들 기록해두기
    독서일지 2018. 1. 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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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페르난도 페소아, 역자 배수아, 출판사 봄날의 책 <불안의 서>를 읽었습니다. 책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작가와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로 읽었습니다. 아주 두꺼운 책이며 단편 에세이 480여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책이었네요.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난 뒤, 마음이 무거웠다 가벼워졌다 왔다갔다 했습니다. 아득히 오래 전 세상 어딘가에 살았던 모르는 한 사람이 느끼는 지독한 슬픔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무겁고, 또 그런 기분에 공감되는 저의 마음이 위로받는 것 같아 가벼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찾아보았습니다. 책이 두껍고 여러 단편 에세이로 엮인 만큼 사람들마다 마음에 남는 단락들이 각각 다르더군요. 제 마음에 무겁게 남아 있는 문장도 간혹 보였고, 또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부분에 감명받은 글들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마음에 남아있는 부분들을 기록해두고 싶어졌습니다. 누군가한테는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는 부분이 저에게는 특별하게 마음을 더 짖눌렀다는 걸 기록해두고 싶어졌어요. 이 책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보다, 지나가지 않고 마음에 남은 부분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1

    아, 나일 수도 있는 그 어떤 타인에 대한 그리움이 내 마음을 갈가리 찢고 광폭하게 휘저어 놓는다!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의 입맞춤을 내 어린 얼굴에 듬뿍 받을 수 있었다면, 그러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2

    나는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온 순간의 너른 들판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지나간 내 일생을 응시한다. 심사숙고한 행동, 가장 명징한 표상, 가장 논리적인 계획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지금 돌이켜보니 타고난 허황함, 숙명적인 멍청함, 엄청난 무식함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깨달을 때, 나는 가히 형이상학적인 충격을 느낀다. 단 한번도 나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연기되는 역할 그 자체였다. 나는 배우가 아니었다. 배우의 연기였다.


    3

    요약하자면, 그 어떤 느낌도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신의 경지가 될 때까지 느낌을 깎아내버리기. 그런 후 다시 싸서 진열장에 넣어두기. 지금 내 자리에서 보이는 저 점원이 조그만 용기에 든 새 상표의 구두광택제를 진열장에 넣듯이.

    ...

    그러다가 광택제 용기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4

    멀리 보이는 범선이 내 테라스에서 물결치는 바다를 완성한다. 남쪽 구름들 속에서 나는 노를 놓치듯이 영혼을 잃는다.


    5

    서랍 첫 번째 칸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주 오래된 원고에서 이러한 사고가 분명히 강조되어 드러나 있지 않는가. 아마도 나는 과거에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리라. 어떻게 나는 이미 오래전에 알았던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단 말인가? 어떻게 나는 이미 어제 오인한 나를 다시 알아차리게 되었는가?모든 길이 미로처럼 뒤섞이고, 나는 내 길 위에서 길을 잃는다.


    6

    그리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에게조차 나는 아련한 그리움을 느낀다.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리고 삶의 비밀이라 불리는 일종의 병 때문이다. 흔히 마주치는 거리의 평범한 얼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슬픔을 느낄 것이다.

    ...

    내일이면 나 또한 프라타 거리에서, 도라도레스 거리에서, 판케이루스 거리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내일이면 나 또한, 생각하고 느끼는 이 영혼, 나에게는 우주 자체나 다름없는 나 자신도, 내일이면 이들 거리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그 사람이 요즘 왜 안 보이는 거지?"하고 문득 떠올릴 것이다. 내가 한 모든 일,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산 모든 삶은, 어느 도시의 거리를 매일 지나다니던 행인 하나가 줄어든 사건으로 요약되고 말 것이다.



    어린 내가 원하던 어른이 된 나는 지금 다른 곳에서 예쁘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점점 멀어졌는지, 어떤 선택을 잘못해서 지금의 초라한 내가 되었는지, 어떻게 지난 날의 나는 풍요로운 마음을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지 너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나, 아버지에게 큰 기쁨이었던 나, 생긋생긋 웃으며 꿈이 있었던 나는 계속 하늘 위로 뻗어가는 가지같은데, 지금의 나는 땅으로 쳐진 가지에서조차 떨어진 마른 낙엽 같습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언젠간 제가 원하던 저와 만나는 날이 오겠죠! 시간이 흘러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을 때 꼭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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